성암서원
유숙과 김홍욱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유숙(1324~1368)은 고려 문신으로 홍건적의 난 때 공을 세워 서령군으로 봉해지고 일등공신 칭호를 받았으나, 공민왕 14년(1365) 그의 충직을 두려워 하던 신돈에게 교살 당하였다. 김홍욱(1602~165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황해도 관찰사 등 여러 벼슬을 거친 분이다.

효종의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으로 죽음에 이르렀는데 "언론을 가지고 살인하여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는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숙종 45년(1719)에 세운 이 서원은 경종 1년(1721)에 나라에서 내린 "성암서원"이라는 현판을 받은 사액서원이다.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24년에 다시 세웠다. 대문 격인 외삼문을 들어서면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게 배치되어 있고 유숙과 김홍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이 서원에서는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성암서원은 서산시 읍내동 명륜산의 서북편에 위치하고 있다. 성암서원은 고려 공민왕 때의 문신 사암 유숙(1324~1368)과 조선 중기 (인조~효종)때의 문신 학주 김홍욱(1607~1654)의 위패(位牌)를 배향한 서원으로 조선 숙종 45년(1719)에 건립되고 2년 후인 경종 1년(1721)에 조정으로부터 사액을 받았다.

그 후 영조 5년(1729) 4월에 사액이 철액 되었다가 21년 후인 영조 26년(1750) 9월에 복액 되었다. 고종 8년(1871) 5월에 조정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건물이 철거되고 위패를 땅속에 봉안하였다가 고종 19년(1882)에 서원 복설령(復設令)이 내려 졌으나 53년이 지난 1924년에 서원을 재건하였다. 매년 음력2월과 8월의 중정일(中丁日)에 지방 유림들이 모여 제향을 지내고 있다.

서원의 외삼문을 들어서면 좌우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된 동. 서 재가 서로 마주보고 배치되어 있고 본당으로 오르는 계단 우측에 서원 중건비가 세워져 있다. 계단 위에 내삼문과 사괴석 담장을 두른 그 안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본당이 위치해 있다.

본당은 전면 반칸에 전퇴를 두고 그 내부에 우물마루를 깔고 위패를 봉안하였다. 건축 구조는 익공계 공포이며 창방 위에 운공이 끼워진 소루가 정면과 측면칸에 각 3구식이 있고 후면에는 운공이 없이 소루만 4구씩 배치되어 주심도리를 받고 있으며 지붕이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가구는 1고주 5량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