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규대사묘
* 종 목 : 시도기념물 제15호 (공주시)
* 명 칭 : 영규대사묘(靈圭大師墓)
* 분 류 :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봉토묘
* 수량/면적 : 1기 (2,479㎡)
* 지 정 일 : 1977.01.06
* 소 재 지 : 충남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산5
* 시 대 : 조선시대
* 소 유 자 : 갑사
* 관 리 자 : 갑사
* 상 세 문 의 : 충청남도 공주시 문화관광과 041-840-2225

* 일반설명

승병장인 영규대사의 묘소로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계룡산의 갑사(甲寺) 진입로를 조금 지나 서쪽편에 위치한다. 영규대사는 밀양 박씨로 호는 기허(騎虛)이며,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제자이다.

계룡산 갑사 청련암에서 수도하면서 무예를 익혔는데 그 재능을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3일 동안 통곡하고 스스로 승병장이 되었다 한다. 승병 1천명을 모집하여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청주성 전투와 금산 전투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다.

의주까지 피난을 갔던 선조는 승전소식을 듣고 영규대사에게 벼슬과 옷을 하사하였는데, 하사한 선물이 도착하기도 전에 금산 전투에서 숨을 거두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승병이 일어난 것은 그가 최초로 전국 곳곳에서 승병이 일어나는 도화선이 되었다.

영규대사는 부상한 몸을 이끌고 현재의 묘소부근까지 와서 숨을 거두었다 한다. 해발 150m의 산록 경사면을 깎아 만든 묘소는 최근에 봉분, 축대, 계단 등의 시설을 보수공사 하였다. 묘비는 순조 10년(1810)에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

영규대사의 성(姓)은 박(朴)으로 본관(本貫)은 밀양(密陽)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의 제자로 원래 공주(公州) 갑사(甲寺)의 청련암(靑蓮庵)에서 수도하다 조선(朝鮮) 선조(宣祖) 25년(1592)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승병(僧兵)을 모집하여 조헌(趙憲)의 의병(義兵)과 함께 최후까지 싸우다 부상한 몸으로, 현재 대사의 정려비각(旌閭碑閣)이 있는 곳까지 와서 숨을 거두게 되매, 갑사(甲寺)의 승려들이 이곳에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무덤에 세운 묘비(墓碑)는 순조(純祖) 10년(1810)에 방계(傍系)의 후손들이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