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선생유허
* 종 목 : 시도기념물 제13호 (공주시)
* 명 칭 : 김옥균선생유허(金玉均先生遺墟)
* 분 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탄생지
* 수량/면적 : 3,264㎡ (출생지)
* 지 정 일 : 1976.12.06
* 소 재 지 : 충남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38
* 시 대 : 조선시대
* 소 유 자 : 공주시
* 관 리 자 : 공주시
* 상 세 문 의 : 충청남도 공주시 문화관광과 041-840-2225

* 일반설명

김옥균 선생이 6세까지 살던 생가지로, 김옥균 생애비가 있는 곳이다. 원래는 김옥균 생가를 비롯하여 8∼9호의 민가가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나, 화재로 모두 없어졌다.

김옥균(1851∼1894)은 조선시대 말엽의 정치가로 ‘위로부터의 개혁’을 외치며 개화사상을 주장하였다. 고종 21년(1884)에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만에 실패하여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1894년에는 한·중·일 삼국의 제휴라는 삼화주의를 주장, 청나라의 실력자 리홍장을 만나러 상해를 방문하던 중 수구파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 당했다.

청나라와 수구파 세력에 의해 빼돌려진 시체는 한국으로 돌아와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었다. 갑오개혁(1894)으로 개화당 내각이 조직된 후에 총리 김홍집의 상소로 반역죄가 용서되었으며, 1910년에는 규장각 대제학으로 추증되었다.

처음에는 일본 동경의 청산외인무덤에 묻혔는데, 1914년 아산군수였던 그의 양자 김영진이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로 옮겨와 부인 유씨와 합장하였다.


한말의 풍운아 김옥균의 묘이다. 김옥균의 호는 고균, 시호는 충달공으로 조선조 철종 2년(1851) 1월 23일 충남 공주군 정안면 광정리에서 출생하였다. 고종 9년(187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은 호조참판에 이르렀으며 1884년 조국 개화를 위해 갑신개혁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1894년 한.청.일 3국의 제휴를 위한 삼화주의를 제창, 동양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청국의 실력자 리홍장과 의논하고자 텐진을 방문하던중 동년 3월 28일 상해 여관에서 수구파의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 당하였으며 시체는 본국으로 돌아와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었다.

갑오경장으로 개화당내각이 조직된 후 총리 김홍집(金弘集) 등의 상소로 반역죄가 용서되고, 1910년 규장각 대제학 추증(追贈), 익호(謚號)는 충달(忠達)이다. 묘(墓)는 일본 동경 청산외인묘지(靑山外人墓地)에서 1914년 9월 11일 의발(衣髮)을 이장, 정경부인 유씨와 합장한 것이다.